본문 바로가기
나들이,여행,역사기행

전라남도 진도 가 볼만한 곳 운림산방

by 아야해 2013. 9. 13.

 

 

 

운림산방(雲林山房)

 

위 치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50 

종 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 51호 

 

서화 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서화 예술가로 꼽히는 분은

조선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이다.

그는 당나라 남송화와 수묵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의 이름을 따 허유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말년에 서울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다.

 

진도읍에서 바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첨찰산 서쪽, 쌍계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ㄷ"자 기와집인 운림산방과 그 뒤편의 초가로 된 살림채,

새로 지어진 기념관 들로 이루어져 있다.

 

운림산 방 앞 오각으로 만들어진 연못에는 흰 수련이 피고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 기의 원형으로 된 섬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꼭 가 보고 싶었던 곳

우리나라 명승 재80호 이었습니다.

 

 '

'

'

'

 '

'

'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을 지붕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루었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485m의 첨찰산 봉우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운림산방은 사랑채, 화실, 1586.78m²(480평)의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된 섬이 있다.

입구의 암벽과 가까운 거리에 쌍계사가 있고, 뒤 첨찰산 서쪽 기슭에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

'

'

'

 '

'

'

'

 '

'

'

다산 정약용(1762∼1836), 소치 허련(1809∼1892), 그리고 평생의 친구되는 추사 김정희(1786∼1856)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는데, 특히 추사와 함께 다산초당을 찾아 유배생활 하시는

 24년 배의 정약용을 스승처럼 섬기면서 유학의 경서를 읽고

실학정신을 계승하였으며 시부(詩賦)를 익히기도 하였다.

 

운림산방 모습

 

 '

'

'

'

 '

'

'

편액은 허백련의 글씨 입니다.

 

 '

'

'

운림산방의 마루에 걸터 앉아서

바라본 정원의 풍경이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에 여기서 오래 살고 싶구나 라고 느껴 지드라구요.

 

한가운데 조그마한 섬에 배롱나무가 색감을 더 했습니다.

 

 '

'

'

소치허공기적비

 

'

'

'

운림산방 뒤 초가 살림채의 풍경 이며 우측에 운림산방으로 가는 길이 있어요.

특이한 것은 돌담이 드라구요.

 

 '

'

'

초가 살림채 마당에 절구와 절구통이 하나 있네요 ..

 

 '

'

'

살림채 내부의 모습 입니다.

 

 '

'

'

부뚜막의 무쇠솥 여기에 밥을 짓고 난 후 누룽지가 정말 맛 있는데..ㅎㅎㅎ

 

 '

'

'

이곳은 양천 허씨 사당 인데 출입이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

'

'

소치운림산방기

 

 '

'

'

멀리 보이는 건물이 소치기념관 입니다.

 

 '

'

'

진도에 가면 이 세 가지는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단다.

첫째는 글씨요, 둘째는 그림이요, 셋째는 노래란다. 그만큼 예술가들이 많았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창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 바로 진도다. 그 중 한국화의 터를 닦은

소치선생의 운림산방은 진도의 명물로 꼽히곤 한다.

 

운림산방의 시원하고 넓은 풍경과 쉬어 갈 수 있는 풍경 입니다.

 

 '

'

'

소치기념관은

오랫동안 방치되던 것이 1982년 손자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화실 안에는 허씨 집안 3대의 그림이 복제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고,

새로 지어진 소치 기념관에는 운림산방 3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 51호이다.

 

소치 기념관 앞에서..

 

 '

'

'

소치기념관 입구 입니다.

 

'

'

'

기념관은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지어 진 것 같았습니다.

 

 '

'

'

운림산방 화맥

 

자연을 그린 산수화에는 남화(남종화)와 북화(북종화) 두 파가 있었습니다.

 북화는 전문적,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그렸는데 색칠이 진하고

꼼꼼하게 형태를 표현한 것 등이 특징이고요 남화는 선비들이 그렸는데 먹을 주로 썼고 색칠을 해도

엷게 했으며 내면세계 표현에 목적이 있었고 그림도 북화보다 부드러운 등의 특징이 있습니다.

 

 소치 허련(1809~1893)은 그 중 남화를 그렸는데 글과 그림 솜씨가 뛰어나 헌종 임금과 흥선대원군(고종 아버지) 에게

큰 칭찬을 받을 만큼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내부의 작품들은 예의상 담지를 않았습니다.

 

 

운림산방 화맥

1대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1808∼1893),

2대는 미산 허형(米山 許瀅:1861∼1938),

3대는 남농 허건(南農 許楗:1908∼1987)과 그 동생인 임인 허림(林人 許林:1917∼1942)),

4대는 임인의 아들인 임전 허문(林田 許文:1941∼현재),

5대는 남농의 손자인 허진(許塡:1962∼현재)으로 이어지고 있다.

허진 이외에도 같은 5대 항렬로는 허재, 허청규, 허은이 화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등산 춘설헌(春雪軒)의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도 진도에서 태어난 양천도 허씨로 같은 집안이다.

 

본관 양천(). 자 마힐(), 호 소치()·노치(). 전라남도 진도() 출생. 후에 연()으로 개명하였다.

서화를 김정희()에게 사사하고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글·그림·글씨를 모두 잘하여 삼절()로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글씨는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화제에 흔히 추사체()를 썼다.


'

'

'

이곳에는 진도 역사관도 있습니다.

내부에는 진도에 관한 많은 자료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