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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여행,역사기행

전남 담양 꼭 가 볼 곳 소쇄원

by 아야해 2013. 9. 25.

 

 

 

쇄원(瀟灑園)

 

위치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123 (명승 제40호)

홍문관(弘文館) 대사헌(大司憲)으로 있던 소쇄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림이며 조선최고의 민간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1530년(중종 25) 조광조의 제자 소쇄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南面) 지곡리(芝谷里)에 건립한 원우(園宇).로
정유재란시 불타 다시 증수 하여 현재 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관리 하고 있다.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오곡문(五曲門), 애양단(愛陽壇), 고암정사(鼓巖精舍) 등
10여 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고,
 광풍각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집이다.
또한 광풍각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남아 있다.

소쇄(瀟灑)는

한자 뜻 그대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말이므로,

속세를 떠난 듯 깨끗하고 시원한 원림이라는 뜻이다.

 
 
제월당에서 광풍각 으로 가는 문을 나서면
화려하지 않은 전통적인  담장이
백일홍과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움이 가슴벅찬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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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안내도
‘소쇄’라는 말은 육조시대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는 “······은자는 속됨을 털어낸 밝은 의표와 세속의 더러움을 벗어난 소쇄한 생각으로
백설을 헤아려 깨끗함을 겨루고 푸른 구름 위로
곧바로 올라가야 함을 이제야 알겠구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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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들어 가는 길에 대나무숲이 시원함을 더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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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은 별서(別墅)원림이며,
별서(別墅)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곳으로,
주된 일상을 위한 저택에서 떨어져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어진 별저(別邸)를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원림(園林)이란 정원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과 우리나라에선 원림을, 일본에서는 정원을 주로 선호한다.

정원이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스런 상태를 그대로 조경대상으로

삼아 적절한 위치에 인공적인 조경을 삼가면서

더불어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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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단(愛陽壇)
애양단(愛暘壇)이란 글씨처럼 따뜻하게 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이다.
부모님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효의 공간으로,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 따뜻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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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처사양공지려
호화롭지 않은 전통적인 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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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문(五曲門), 
오곡문(五曲門)이 뚫린 담장 밑으로 흘러 들어온 물길이 다섯 번 굽이쳐 돌면서 흘러내려 간다.
즉 조그마한 연못이라 칭하는 암반 위의 조담(槽潭)에서 머무르고
소폭(小瀑)을 만들며 떨어져 십장폭포를 이룬다
 
소새원의 담벼락,
흐르는 시냇물을 막지 않고 담장을 새워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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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霽月堂)
제월당은 안채에 해당 하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방과 대청르로 구분된 평범한 가옥이다.
주인이 기거 하며 소쇄원을 경영했을 주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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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霽月堂)
제월당은 소당(小堂), 고당(高堂)이라 불리기도 한다
소쇄원에서 제일 높은곳 있으며 제월당은 "비가 갠 뒤 하늘의 맑은달"을 뜻 하며
주인이 거처 하며 조용히 독서를 즐기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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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은 연등천장과 우물천장을 혼합한 형태로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에는 눈썹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처마는 홑처마이며 추녀 끝에는 팔각의 활주를 세우고 합각부분에서
우미량 형태의 충량이 보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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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의 아궁이에 불을 땐 흔적이 옛적 어르신들의 따뜻했을 것 같은 아랫목이 그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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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 들어가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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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으로 내려 가는 계단과 광풍각
ㄱ자로 꺾인 담장과 조그마한 초정(草亭)
소쇄원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민간원림 가운데서 디자인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소쇄원은 우선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그 사이를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
수많은 나무와 화초, 몇 단의 축대와 단아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아담한 공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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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 내려가는 길 ㄱ자 담장이 특이한 형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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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光風閣)
광풍각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집이다.
또한 광풍각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남아 있다.
 손님이 저 아래 버드나무에 말을 매고 광풍각 아래에 이르러 제월당에 있는 주인을 부른다.
 
광풍각은 온돌방의 따뜻함과 협소함, 마루의 시원함,
작지만 당차고 아담한 공간의 핵심으로 모든 것이 모이고 확산되는 정점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 앉아서 소쇄원의 공간뿐만 아니라 저 멀리 서석산까지의
외부공간을 느끼며 주변을 바라보는 것은 소쇄원의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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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각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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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서 본 광풍각 풍경

양산보(梁山甫)는 후손들에게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하나라도 상함이 없게 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들에게는 물려주지도 말라”고 유언을 하였다.

 

그러한 덕에 오늘날 우리는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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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 보이는 광풍각과 뒤편에 보이는 곳이 제월당 이다.
 

송순, 정철, 송시열 등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이 드나들었던 소쇄원은
눈으로 감상하는 시각적 차원을 넘어선 청각적인 정원이며 궁극적으로
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적인 정원이다.
 
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마음이 하나로 합치하는 곳,
그곳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청각과 음영의 효과….
이제는 우리도 문학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소쇄원의 원림과 건축적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정원, 우리 전통 정원의 종류

우리 전통 정원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궁원과 향원, 민간정원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정원의 성격에 따라 별서정원, 산수정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창덕궁의 후원이 대표적인 궁원이라면 남원 광한루는 지방관리들이 조성한 향원에 해당한다.

별서정원은 선비가 낙향을 하여 꾸민 정원을 의미하는데 보길도 윤선도의 부용동,

이곳 소쇄원 등이 대표적이다. 산수정원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하여

만든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를 생각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