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감은사지 [慶州感恩寺址]
위 치 : 경상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사적 제31호의 통일신라시대 절터
쌍탑식 가람으로서, 남북의 길이보다 동서회랑의 길이가 길게 구성된 점과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의 회랑을 잇는 중회랑을 둔 점이 특이하다.
사지의 남쪽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문지가 있고,
이 중문 좌우로 후면의 강당지에 이르기까지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다.
중문 북쪽으로 금당 앞과 좌우에는 같은 형태의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양탑의 중앙부 후면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금당지가 있다.
정연하게 쌓아올린 2층 기단의 4면 중앙에는 돌계단이 각각 배치되었고, 가공된 갑석(甲石)과 지대석 등이 보인다.
금당의 바닥구조는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장방형의 석재유구(石材遺構)를 동서방향으로 깔아서 마치 돌마루를 얹어놓은 것같이 되어 있다.
그 위에 주초(柱礎)를 배열하고 건물을 세웠던 특이한 구조로서,
금당의 저면에서부터 일정한 높이의 공간을 형성하여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을 감은사 금당에 들어오게 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부합되는 것이다.
용당 탑마을 당나무와 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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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무에 아침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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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동삼층석탑(좌측)과 서삼층석탑(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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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12호인 경주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
신라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웠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한 곳이 절 부근의 대왕암이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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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이 동삼층석탑 좌측이 서삼층석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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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13.4미터며 동서 양쪽에 하나씩 쌍 탑으로 조성된
신라 최대의 석탑인 감은사지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은
그 이전의 평지 가람에서 산지 가람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신라 옛 절에서 보이는
1탑 중심의 가람 배치에서 2탑 1금당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최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탑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
즉 안정감과 상승감에서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0년 서쪽 탑을 해체, 수리하던 중 탑 3층 몸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사리함(보물 제366호)이 발견되었고,
몇 년 전에는 동쪽 탑을 수리하던 중 나온
사리장엄구(보물 제1359호)등 여러 가지 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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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동삼층석탑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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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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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층석탑 쪽에서 본 감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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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서삼층석탑 측면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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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감은사지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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